○​ 전시기간: 2023. 10 . 7. ~ 11. 19. (매주 월요일 휴관/ 10:00~18:00)

○​ 장소: 드영미술관 제 1, 2전시실

○​ 참여작가: 김자이, 박정일, 이유빈, 이인성​

​○​ 문의: 062-223-6515 

기획글

외계의 사물이 자신의 일부처럼 인식되는 경험을 한 사람은 적지 않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의 당혹스러움과 복잡한 감정이 이를 설명해준다. 특정한 물건에 애정이 생길 때 그 물건에 투사된 자기애narcissism와 마주하기도 한다. 본 전시의 제목으로 쓰인 ‘왓츠 인 마이백(What's in my bag: 내 가방 속 물건들)’은 사회의 전반적인 트랜드를 선도하는 유명인들이 SNS, 유튜브 등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본인이 항상 지니고 다닐 만큼의 가치가 있는 애장품을 가방 속에서 하나씩 꺼내며 소개하는 콘텐츠 명이다. 시집, 영양제, 스케줄러, 텀블러… 가방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물건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 콘텐츠는 이른바 완판이 되게 하는 광고효과를 가지기도 하지만, 내가 동경하는 한 사람의 소중한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다. 일반인들 또한 자신의 온라인 공간에 본인의 가방 속 소지품을 끄집어내 가지런히 정렬하여 촬영하고 공유함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소지품이 갖는 의미가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것은 나의 삶, 즉 나 자신과 직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는 그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정보가 가득하다. ‘가방 속’이라는 말은 넓게는 내 차 또는 방 안, 깊게는 내가 자주 하는 생각이나 감정까지도 확대될 수 있다. 이처럼 내 가방 속 물건들은 곧 나의 내면의 방으로 통하는 문턱이 된다. 본 전시에 참여한 김자이, 이유빈, 이인성, 박정일 작가는 사소한 일상에서 미학적 가치를 발견해 이를 예술로 들여와 자신의 내면을 묘사하고 있다.

본인의 휴식방법에 대한 탐구를 시작으로 확장되고 밀도 있는 작업을 전개해오고 있는 김자이(b.1982)는 본인의 휴식방법과 타인의 휴식방법을 서로 교환하며 공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이번 전시는 수천 건이 넘는 그동안의 공유 리서치 결과의 일부로 공간을 조성하였다.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을 잃은 채 살아가기도 한다. 속도주의, 성과주의의 사회에서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듯 방황하지만, 그 모습조차도 나 자신임을 인정하는 것이 나를 알아가는 첫걸음일 수 있다. 관객의 참여를 통해 완성되는 작품은 조용한 공간에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마음을 살피게 하여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유빈(b.1998)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상상을 건져 올려 섬을 모티프로 한 작업을 선보인다. 섬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연결된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그에 수반된 과제들 속에서 평안과 안식이 있는 나만의 공간으로 재해석된다. 실제 자연의 색채가 아닌 푸른 계열의 한 가지 색을 사용하거나 섬을 하얗게 도포해 의도적으로 여백을 두는 것은 마음 속 어딘가에 육체적, 정신적으로 쉬어갈 만한 곳을 마련하게 한다. 작가에게 있어 섬으로 향하는 것은 결코 일상과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음 세계로 향하기 위한 사유私有의 공간이자, 사유思惟의 세계인 것이다. 나의 섬은 무엇인가, 어디인가 깊이 사고하며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나에게 필요한 긴 호흡의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평범한 삶의 한 장면을 포착하여 그 현상을 보고 불현듯 다가오는 감정 또는 깨달음을 그림으로 각색하는 이인성(b.1982)은 현실의 다양한 내러티브를 그대로 재현하는 편리함을 선택하지 않고 은유적으로 담기를 고집한다. 이 과정에서 일상의 다의성과 작가의 고뇌가 응축되어 작품이 한층 더 깊어진다. 한 프레임 안에서 무심해 보이는 두툼한 터치로 그려낸 구상적 형태의 한 장면과 추상성을 갖는 주황색 점이 함께 존재하고 비교적 차분한 색감과 눈에 띄는 형광의 색이 공존하는 등 대조적 성격을 띠는 여러가지 장치가 조화를 이룬다. 삶의 목적을 가리키는 기표로 작용하는 화면의 주황색 점은 작품 속에서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착각을 일으키는데, 이러한 아이러니한 요소들은 이인성 회화의 큰 특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관람객은 누군가 특별히 요구하지 않아도 그려진 장면과 주황색 점의 관계를 유추하며 자연스레 작품에 개입하게 된다.

박정일(b.1979)의 화폭에는 반려동물이 등장한다. 인류역사에서 인간과 동물은 오랜 시간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주로 가축으로 취급되어 농사일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식용으로 쓰이며 의복의 재료로 여겨져 왔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1인 가구 증가, 소득 증가의 사회변화와 맞물려 중요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모든 작품의 동일한 명제 ‘Family’에서 말하고 있듯 작가에게 반려동물은 벗이고 가족이다. 사람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대상이 되어 심리적 공생관계로 깊어지고 있는 이들은 화면 안에서 운전을 하고 있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는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황들의 주인공으로 의인화되었는데 작가의 상상과 위트가 더해져 더욱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독자적인 이미지나 고유의 향기가 있으며 이를 본능적으로 드러내려한다. 물건을 구매하거나 생활하는 공간을 조성할 때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내가 애정하는 물건에서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욕망이 발견되기도 하고 그것을 소지함으로 스스로의 결핍을 채우기도 하며,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개로 활용하기도 한다. 특별할 것 없는 물질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이번 전시에서 삶의 미학적 변용을 탐색하는 네 명의 작가가 선보이는 시각작품을 통해 또 다른 세계와 마주하고 자신에 대한 신선한 사유를 근거로 하여 일상을 환기하기를 기대한다.

드영미술관 학예실장 김수정